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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후기

20160602 제2강 다문화, 누적된 시간만큼의 혐오

20160602 제2강 다문화, 누적된 시간만큼의 혐오

 

제2기 고양인권학교, 두 번째 강의는 이주민방송MWTV 정혜실 공동대표가 진행해주셨습니다.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하면서 다문화인권 등의 주제로 활동하기 시작하셨고, 16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셨어요. 활동을 하면 할수록, 이주민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의 핵심이 ‘계급’이 아닐까 고민이 깊어진다며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강의를 열어주셨습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2015년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테러방지법 등도 만들어졌는데요, 시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국가의 폭격에 죽어가고 겨우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 난민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 이유는, 시리아에서 살다 왔다는 이유로 ‘테러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정당에서는 ‘이슬람, 반기독악법을 꼭 막아내겠다.’ 등을 공약으로 선언하기도 하는 등 이주민을 향한 혐오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주민에 대한 ‘혐오’, 그 근거는 어디에서부터 봐야할까요?

 

우리나라에서 인종차별사건으로 성인종차별공동행동이 꾸려진 일이 있었습니다. 2009년, 일명 ‘보노짓 후세인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당시 이 사건은 버스 안에서 한국인 여성과 동승한 채로 이야기를 하면서 집으로 귀가하던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씨를 향해 한국인 남성이 반말과 욕 그리고 모욕적인 언사로 동승했던 여성까지 공격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와 함께 한국여성의 국제결혼이나 외국인과의 연애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일어난 사건이었지요. 영미권이나 유럽 등의 출신이 아닌 이주민은 이주노동자라고 전제하는 등의 계급의 문제도 함께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일상에서 혐오표현을 드러냈던 것이 이제는 종교갈등을 빙자한 집단 대 집단이라는 대결구도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살인보다 압제가 나쁘다’는 교리를 ‘살인해도 좋다’ 등으로 바꿔 무슬림 이주민들을 향해 의도적이고, 차별선동적인 형태로 대중을 향해 왜곡된 정보와 사건을 유포하고, 이러한 혐오표현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인권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까요. 더구나 방송 등을 통해서도 이슬람 국가들이 폭격당하는 것은 방송되지 않으나 IS가 폭격하는 장면은 수도 없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혐오인지도 모르거나 혐오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혐오 이면에는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광범위한 적대감이 존재합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시킬 수 있게 하겠다는 대응은 분명 장애인혐오가 만연하기에 가능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은 시간이 지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만, 결혼이주남성은 비자도 주지 않아 3개월마다 한번씩 고국으로 돌아갔다 오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으면 미등록이주민이 되고 맙니다. 유학, 노동, 투자 등에 있어서도 출신 국가에 따라 분명 다르게 대우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과 관련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기피하거나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이들의 소비 및 생산 등에 있어 경제적 기여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지요.

 

1887년 독립신문의 논설 속에서도 인종주의를 엿볼 수 있듯이 흰 피부에 대한 선망과 검은 피부에 대한 경멸은 시대를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도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12년 오원춘 사건과 함께 인종주의적 혐오표현은 공포와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당시 수원시장은 “수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다 불법체류외국인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이주민에 대한 공포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해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사건의 본질을 바로 봐야합니다. 한 사건을 본인과 구분 짓기 위한 여러 시도들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야 합니다.

 

‘다문화’라는 말 속에는 어떤 것이 숨어있을까요? 모든 말 앞에 ‘다문화’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인종적 그룹을 백인과 흑인으로 나누듯이 한국인과 다문화인이라는 집단적 구별을 가능하게 합니다. 특히 ‘다문화’와 관련된 특정한 고정관념을 생산해낼만큼 다문화가족의 구성원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문화 그리고 외모의 다름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이란 지원의 대상이거나 소외계층으로 많이 보도됩니다. 이러한 인식은 빈곤의 이미지가 강화될 우려가 있어요. 그리고 이것은 철저하게 계급적 인종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특히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이란 보통 결혼이주여성과 이루어진 가정이며 결혼이주여성에 대해 ‘돈을 주고 사왔다’는 인식이 깔려있어 존엄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혐오의 근원은 바로 차이와 차별입니다. 왜 아랍 등의 국가의 히잡은 억압이라 부르고, 수녀복은 그렇게 불리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억압’을 규정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유권규약 비준 국가입니다. 국제법적으로 보면, 혐오 표현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인정됩니다. 세계인권선언과 주요 국제인권조약의 기초가 되는 원칙은 차별금지와 평등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업성과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조항들을 두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를 선언상의 모든 권리와 관련한 공통의 원칙(제2조)으로 규정하는 한편, ‘차별이나 차별의 선동에 대해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제7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비준한 것에 대해 법으로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더없이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